여행이야기/춘천여행

풀숲을 헤치며 찾아가는 경춘 옛길을 걸어서 문학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하얀벼리 2012. 5. 18. 06:00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시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문학여행이 있다고 같이 가자는 말에

선득 약속을 하고 신청을 하였습니다.

나는 저질 체력이라 힘든 여행은 하지 못하는데

아니 해본 적이 없는데 조금 겁은 났지만 그래도 남들이 하는데

한번 가보자 하고 크게 마음 먹었습니다.

내 체력을 아는 남편은 힘들면 콜택시 불러서 타고 오라고 했지만

콜택시는 커녕 경운기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설레고 기대되는 맘으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출발하였습니다.

 

 

2012년 5월 춘천 문학여행

주최 춘천시립 도서관

 

 

춘경(春景)통로(通路)- 석파령 옛길

 

1920년 경춘국도가 개설되기 전 춘천의 관문이던 석파(石坡)령(嶺)은

춘천 고지도는 물론 춘천 유람기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삼악산 북쪽 고개인 석파령은 신.구 춘천부사의 교구식이 있었던 곳으로

한 자리를 둘로 나눠 앉아 석파령으로 불렸다고 한다.

일명 사직고개, 2번 눈물고개로도 불린다.

안보역이 있던 당림리에서 석파령을 넘으면 덕두원,

이곳에서 새수고개를 넘거나 강길을 따라 신연강 배터로 가는 길과

성골에서 감와리로 가던 고갯길,

수레너미를 넘어 방동리로 가던 길이 있다.

현재 석파령 옛길이 넓게 남아 있는 것은 춘천 이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당림리 삼거리에서 내려 예현병원앞까지 왔다.

예현병원앞이다.

 

가방에 문학여행 깃발을 하나씩 달았다.

일행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란다. 

 

이제 시작이다.

모두 자연을 감상하며 경쾌한 발걸음을 내 딛는다.

 

당림리(지명유래)

당림리 마당골은 석파령에서 서울 쪽으로 가는 첫 마을 이었다.

넓은 언덕에 울창한 숲이 있어 언덕 당(塘) 수풀 림(林)이라 하는데

이 당림 속에 말의 안녕을 비는 이색적인 집, 마당이 있었다고 한다.

안보역에 적을 둔 늙은 말이 춘천 ~ 안보역(40리) ~상천역 (80리) 길을

성실하게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실어 날랐는데,

언제나 당림 당 숲에 와서는 사람이나 짐을 내리게 하고

숲 안쪽에 있는 무덤을 향해 재배를 하고 갔다고 한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할미말을 기리는 것으로 고을원이 이 사연을 듣고

말의 효성을 갸륵하게 여겨 말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당을 짓고,

말의 안녕을 위해서 사람도 의관을 갖춰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후 마당리라 불리게 되었다.

 

 

 

모를 디빈다고 할머니가 웃는 얼굴로 반기시며 이야기 해주셔서

다시 되 물으니 심어놓은 모가 제대로 심기지 않아 떠오르거나

빠진 곳에 다시 심는 중이라며 환하게 웃어주신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말을 걸어주는 젊은이가 있으면 반가운가보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인가 싶다.

 

예현 병원 뒷편에서 이제 우리는 잘 닦여있는 길이 아닌

옛길을 찾아 산길을 타야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을 한다.

 

나무가 우거져있는 길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지난 가을의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위를 밟으며

조심스레 걸어가는 길이 신기하기만하다.

 

숨가쁘게 산을 오르다 하늘을 쳐다보니

나무의 푸른 빛과 어우러진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한참을 올라 석파령 정상에 올랐다.

임도가 닦여진 길이라서 그곳은 편안하게 앉아서 쉴 수가 있는 곳이었다.

 

석파령

삼악산의 북쪽 능선이 이어지는 곳으로 서면 덕두원리와 당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예부터 춘천의 관문으로 고지도 및 여러 문헌에 나오며 좁고 험한 고개로도 유명했다.

청음 김상헌의 청평록엔 석파령을 넘는데

'고갯길이 험준하고 협소하여 겨우 말 한 마리가 지날 정도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숲과 깊은 골짜기에 시야가 아득하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임진년 (1592년)에 왜구를 피해 온 가족이 걸어서

이곳을 지날 때를 생각하니 추억이 창연하다'고 했다.

상촌 신흠도 춘천으로 유배 왔을 때 쓴 춘성록에

'내가 석파령에 이르렀을 때 그 험준하고 위태로움에 겁을 먹어 말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길 아래쪽으로 아득히 솟아있는 낭떠러지를 보고 정신이 오간데 없을 정도였다.‘라고 했으며,

농암 김창협의 동왕기에도 병자년 8월 18일 해가 뜰 무렵에 출발하여 석파령에 올랐다.

'고개 길이 매우 험준하여 도보로 걸으면서 말을 쉬게 했다’고 기록되어있다.이 있었던 곳.

 

 

 

기념촬영도 하고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제 내리막을 걸으니 여유가 생기나보다.

지나가며 보이는 산나물도 조금씩 손이 간다.

 

어딘가는 모르지만 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먹었다.

친구들이 조금씩 다른 반찬을 싸왔으니

차린 음식은 진수성찬이되고 힘든 산행을 했으니

밥맛은 꿀맛이 되었다.

 

식사로 잠시 휴식을 가진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어딘가 민가가 보이고 이곳이 성황당이라고 설명해주시는 안내자 신용자 선생님이시다.

 

누구의 비석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민씨 집안의 누군가라고 했는데

잘못 적으면 안될 것 같아 그냥 성씨만이라도 적어본다.

 

한참을 걸어 덕두원으로 내려왔다.

 

 

덕두원

조선시대 덕두원 석파령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쉼터로도 유명했지만

소양강에 뗏목이 흐르던 시절 덕두원 포와리를 지나는 떼꾼들의

휴식처로 번창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 춘천에서 한양(서울)로 가려념 ‘소리개(송암리)마을에서

신연강가의 배를 타고 건너 덕두원 골짜기를 타고

석파령을 넘어 안보리로 나갔다'고 한다.

덕두원에는 민속놀이 ‘덕두원 주막놀이가’있는데,

석파령 교구식과 덕두원 주막거리 건달들이 등장한다.

 

 

이곳이 옛 덕두원 주막터란다.

다시 주막터로 복원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마을을 지나가며 장작을 예쁘게 쌓아놓은 집이 있어 잠시 찍어 보았다.

반듯하게 쌓아놓은 장작이 겨울은 지났지만

마음을 푸근하게한다.

 

세수고개 길을 찾아 산으로 오른다. 

 

오르는 길의 큰 나무가 불당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안내자님이시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물었더니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길과 길 이야기를 듣고 채록한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길을 잃고 찾아가느라

다리도 후들거리고 힘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산행을 마치고 잠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함께한 친구들은 환한 웃음으로 행복해 보였다.

 

힘들었지마나 즐겁고 자신을 확인해본 여행이었다.

어제 돌아와 지도를 보면서 내가 갔었을 길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그려보았다.

다소 틀리는 부분이 있으지 모르지만 거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올려본다.

 

준비 없는 여행이었지만 다음 부터는 착실한 준비로 상세한 여행정보를 적어 봐야겠다.

 

옛길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살아있는 유적지이다.